민주주의의 당연한 요구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이 안장되어있다.
저를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순간부터 사회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이 제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대해 감동을 많이 받으시고, 같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요. 부담감도 있지만, 한편으론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됐어요. 사실은 거창하거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구성원으로 낸 작은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서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경을 쓰게 됐어요. 재식이란 친구도 광주에 사는 굉장히 평범하고 뭔가 어떤 커다란 의지를 갖고 있다거나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어요. 광주의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보탠 친구였던 것 같아요.
결국 역사적 상상력의 문제이다. 기록의 뼈대 위에 어떻게 믿음직하고 생생한 허구를 덧씌우는가. 〈군함도〉는 너무 나갔고 〈택시운전사〉는 지나치게 무난한 길을 택했으며 〈박열〉은 그런 것을 꺼낼 여유도 없이 실화에 끌려다닌다. 결국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통제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던 셈이다. 이 정도면 날 잡아 역사적 상상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된 게 아닐까.
1980년 5월의 광주는 지금까지 답이 없는 물음으로 존재해왔다.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답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답을 할 의무와 책임을 명확하게 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부분 억울한 표정을 짓거나 비통한 울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런 탓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영화로 즐긴다기보다는 목격해야만 하는 어떤 증거처럼 여겨졌다. 〈택시운전사〉에서도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통증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한 차례 거르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